
정용상사무총장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 근대 산업유산을 둘러싼 역사적 의미와 강제동원의 개념을 국제적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재단은 8월 7일 재단 대회의실에서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다각적 접근: ‘강제동원’의 개념과 ‘산업유산’의 의미」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국가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돼 온 ‘강제노동(Forced Labor)’과 ‘강제동원’의 개념을 살펴보고, 일본의 근대 산업유산을 어떤 시각으로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지를 학술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산업유산을 단순히 근대 산업 발전의 성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산업시설의 건립과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강제동원과 인권침해의 역사까지 함께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전체 역사(Full History)’의 관점이 주요 논점으로 다뤄졌다.
이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특정 국가나 지역의 산업 발전만을 강조하기보다 해당 유산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과거의 갈등을 객관적으로 기억함으로써 미래의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다.
사도광산·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일본 사회의 인식 변화 조명
학술회의는 총 3부로 진행됐다.
제1부에서는 「세계유산 등재에 관한 일본 사회의 다양한 반응」을 주제로 일본 내 산업유산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역사 인식의 변화를 살펴봤다.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 국제정보대 교수는 202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도광산’을 둘러싼 지역신문 『니가타일보』의 보도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사도광산과 관련된 조선인 강제노동이라는 이른바 ‘부정적 역사’를 일본 지역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 변화 양상을 짚었다.
박진한 인천대 교수는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사례로 일본의 산업시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한 ‘문화재’ 중심에서 ‘유산’이라는 개념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검토했다.
동아시아에서 바라본 ‘강제동원’ 개념
제2부에서는 「동아시아 사회의 ‘강제동원’ 개념」을 주제로 북한과 국제사회에서 강제동원 문제가 어떻게 서술되고 다뤄졌는지를 살펴봤다.
양지혜 대구교대 교수는 북한의 ‘강제동원’ 서술체계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분석했다.
공준환 충북대 교수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강제노동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조사되고 기소됐는지를 살펴보며 전후 국제사회의 강제노동 인식과 법적 처리 과정을 조명했다.
유럽의 전쟁사 속 ‘강제동원’…국제 규범의 형성 과정 분석
제3부에서는 「유럽사의 맥락에서 바라본 ‘강제동원’ 개념의 역사」를 주제로 강제동원을 둘러싼 국제적 규범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현명호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강제동원 금지 규범의 기원을 1930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이전으로 확장해 살펴봤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군수법과 독일의 벨기에인 강제이주 사건을 중심으로 당시 강제동원에 대한 비판 담론이 어떻게 형성됐으며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킴 크리스티안 프리멜(Kim Christian Priemel) 오슬로대학 교수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강제노동’ 혐의가 다뤄진 과정을 분석했다.
특히 나치 독일의 정치인 프리츠 자우켈(Fritz Sauckel)과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등에 대한 재판에서 강제노동 문제가 유죄 판결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 배경을 조명하며, 강제노동에 대한 전후 국제사회의 법적 판단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폈다.
“산업 발전의 역사와 인권침해 역사 함께 기억해야”
정용상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은 이번 학술회의의 의미를 강조하며 “이번 학술회의가 강제동원과 산업유산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다양한 논의를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 역사’의 관점이 확산될 수 있도록 관련 연구와 국제적 논의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일본의 근대 산업유산을 둘러싼 논쟁을 단순한 한·일 간 역사 갈등의 차원을 넘어, 세계유산의 가치와 역사적 책임, 강제동원 및 인권 문제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는 국제적 논의의 장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산업 발전의 성과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역사까지 함께 기록해야 한다는 ‘전체 역사’의 관점이 향후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 그리고 동아시아의 역사적 화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